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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時習/식물도감

한여름, 배롱나무 백일홍꽃을 노래함!

by 박카쓰 2021. 8. 10.

7월 들어 더위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할때쯤이면 배롱나무 백일홍 이른바 목백일홍이 제 철을 맞아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우와~ 이 아름다움이란...

 

100일 동안이나 핀다하여 백일홍이지만 실제로는 한번 피면 100일 동안 피어있는 있는 것이 아니라 100일 동안 꽃들이 피고지고하는 것이다.  7월에 피기시작하니 100일 동안 꽃이 피어 꽃이 질때면 10월이니 여름은 이미 다가고 가을도 성큼 들어서있다.                                        

꽃이 계속해서 100일동안 피고진다.

 

거의 매일 아침이면 운동다니는 명암저수지 한켠에 목백일홍꽃이 만발해있다. 꽃 색깔도 다양하다. 

 

이제부터 박카스의 배롱나무 역사(?)를 말해보려한다.

 

 사실 백일홍하면 예전 내 초등학교 화단에 있던 이 꽃을 말하는 줄 알았다.  다양한 꽃색으로 동그란 모양으로 오래도록 피어있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꽃이다.  게다가 이녀석도 목백일홍처럼 해마다 여름이면 그 자리에 또다시 꽃을 피우곤했다. 

 

청주중학교 교정... 충북에 있는 1번지 중학교답게 학교의 화단이 고목과 어우러져 정말로 아름답다.

 

그중 군계일학은 이 배롱나무 꽃이었다. 

홍자색 꽃이 100일동안 피고지어 붙여진 이름이다.

 

저 꽃이 피기시작하면 방학이 가까워옴을 느낄 수 있었고  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에 갈 때도 여전히 활짝 피어있었다. 

꽃색깔은 홍자색이다.

 

 지금이야 이 배롱나무를 이곳저곳 지천으로 볼 수 있다.  어느 도시에서는 가로수로 배롱나무 터널로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이 더운 여름철에 볼 수 있는 꽃은 배롱나무꽃뿐이니 더 눈에 확 들어온다.

 하지만 내 어릴 적에는 이 나무는 거의 볼 수 없었고 남부지방에서는 꽤 많이 볼 수 있었단다. 그만큼 지구 온난화가 되어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남부지방에서는 자랄 수 있었다.

 

과연 이 배롱나무는 어디에서 연유했는가?

 

배롱나무의 원래 이름은 백일홍나무이다. 그러나 그 발음이 ‘배기롱나무’에서 와전되어 배롱나무로 굳어진 것이다.  초본 백일홍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 목백일홍이라 부르며 한자 이름으로는 ‘자미화(紫薇花)’이다.

 

배롱나무의 꽃은 7월과 8월과 9월 초에 각각 20여 일간 피고, 이후 10여 일 정도 시들어 모두 100일 정도 연속해서 피고 진다고 한다. 배롱나무는 특히 8월 말에서 9월 초에 피는 유일한 꽃으로 예로부터 조상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2005년 충*고 교직원연수로 전라남도 담양을 찾았다. 그때 정자문화와 가사문학을 소개하면서 소쇄원, 식영정에 이어  배롱나무로 뒤덮힌 명옥헌을 찾았었다. 

명옥헌...

 

조선 중기 명곡(明谷) 오희도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 은둔하면서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에 정자를 짓고,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어 가꾼 정원이다.

시냇물이 흘러 한 연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가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옥이 부딪히는 것만 같다고 하여 연못 앞에 세워진 정자 이름을 명옥헌(鳴玉軒)이라고 한다.

명옥헌 원림

 

  TV에서 우리조상의 건축술 감동적인 미학으로  안동 병산서원이 소개되었는데 한여름 배롱나무로 수놓은 서원 모습이 환상이었다.  2017년 여름  가족여행으로 안동 하회마을을 거쳐 병산서원을 찾았다. 도착해보니 와~ 온가족이 이 풍광에 다들 놀랐다.  

와~ 배롱나무...

 

배롱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있었다.

 

만대루에 올라 병풍처럼 둘러진 병산을 바라보며 예전 류성룡 등 사대부 흉내내보려고  참 오랫동안 취해 있었다.  

 

 

우리 민요에 나온다. 노새 노새 젊어서 놀아 늙어지며는 못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오 달도 차면 기우는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열흘 붉은 꽃이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배롱나무는 그 붉은 꽃잎들을 백일동안 간직한다하여 ‘백일홍(百日紅)’이라 이름 지어졌다.

 

또한, 꽃이 화려하고 영화로운 부귀와 다산(多産)을 상징하기도 하고 청에 소나무, 홍에 배롱나무를 비유할 정도로 배롱나무의 기품이 소나무에 버금갔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사대부들이 매화, 소나무와 함께  배롱나무를 집안에 심어 두고두고 바라보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