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단수첩/해외연수

호주 울릉공High School 어학연수 학생인솔

by 박카쓰 2004. 8. 14.


2004년 2월...올해가 2013년이니 벌써 10년되었네요. 사진만 포스팅해놓았다가 이제사 그때의 감회로 몇자 적어봅니다.

 

 

2004년 2월 미*중 5년 근무를 나오며 마음이 참으로 찹찹했다. 1999년 그학교 들어갈때는 사과상자를 싸들고 애원(?)하다시피 들어갔는데 정작 나올때는 그 사과상자가 내 맘과는 다르게 이미 썩어있었다. 평소 적극적이지 못하고 김시습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도 잘못일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초심을 잃고 상황에 따라 조삼모사가 하는 삶도 안되는 거다.

 

울적한 마음을 달랠 겸 호주를 다녀오자고?솔직이 내키지않았는데 이미 엎지러진 물 ㅠㅠ 어쩌겠냐. 해외에서 또 다른 세상보자며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지요.

 

 

사쌤, 미*중 학생들, 교사자녀들 30여명과 함께...

 

 

호주 staff들과의 만찬...

 

 

인공도시인 캔버라, 호주의 수도다. 멜버른과 시드니가 서로 수도가 되겠다고 싸우니까 중간되는 지점에 인공적으로 도시를 만들어 수도를 정했단다.

 

 

이 프로그램 담당자셨는데 그날 함께 학생들을 인솔하고 캔버라에 갔었다. Canbera는 호주토착어로 만남의 광장이라는 뜻이란다.

 

 

캔버라 국회의사당(?) 앞에서...반바지를 입고다니니까 아이들이 내 종다리를 보고 다리짱이라고 했다 ^^

 

 

그때 마라톤을 한 참 할때여서 날씬(?)했는데....

 

 

울릉공에서 시드니에 이르는 해안도로...그리고 그 깨끗한 환경에 놀랬다.

 

 

학생들과 수영도 함께 했다. 어라! 그곳 교장선생님이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장난을 치네. 우리네 교장선생님같으면 멀리서 위엄(?)만 지키시는데...

 

 

 

 

 

이슬람 사원이었던가????

 

 

호주에 흔치않는 불교사원...

 

 

사샘과 연인(?)처럼...ㅋㅋ 사쌤이 이 프로그램 도맡고 난 그저 쫓아다니기만 했으니 편했다.

 

 

이 학생들에게 동양문화 특강도 해보았다. 여필종부...여자는 반드시 남편의 말에 따라야한다. 사내 男...남자는 밭에서 일을 해야한다.편안할 安...여자는 집에 있어서 편안하다?서양문화는 horizonal 수평적 구조이지만 동양문화는 hierachy  수직적 구조...

 

 

의학, 법학대학에 진학하려는 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내 영어가 짧았다. 질문에 시원하게 답변도 못했다. 

 

 

홈스테이했던 선생님 댁...조용한 주택가였고 이웃들과 어울리는 것도 없고 뒤뜰에 많은 새들이 먹이를 찾아 오곤했다.

 

 

울릉공 시내...여기서도 나는 부지런을 떨어 아침에 바닷가까지 뛰었다가 왔다.그런데 돌아올때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가고싶었다.그래서 여행 거의 마지막 혼자서 저산에 오르려다 길을 잃고 헤맸는데나중에 머리가 아파오고 하는 수없이 개인주택으로 들어가 소리쳤다."Please help me. I'm lost."그때 당황했던 기억, 아직도 생생하다.

 

 

남편은 울릉공 중고등학교 과학교사, 부인은 인근 음악교사...남편 영어발음은 어려웠고 부인은 다소 쉽게 알아들을수 있고 아주 상냥했다.

 

 

보름동안의 연수를 마치고 마지막날 공연을 펼치고 있다. 홈스테이 가족들이 모두 참석하고 아주 흥겨운 시간이었다.

 

 

나도 연단에 올라 호주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문화를 소개하는 퀴즈대회를 열었다.

 

내게도 이런 메달을 걸어주네.

 

 

와...다시금 뵙고 싶은 분들...

내 홈스테이맘, 나, 사샘 홈스테이맘, 울릉공교장선생님, 사쌤

 

 

내홈스테이파파, 나, 울릉공 선생님...체육교사로 기억하는데 학생들에게 어찌나 다정다감한 지...

 

 

세월 참으로 빠르다.이 연수가 벌써 10년이 되었으니 ...5년후 충북고근무할때  충북교육청 멤버른어학연수로 호주를 다시 다녀왔다.

티셔츠 로고 "청마회"는 청주 마사회가 아니라 청주 마라톤 클럽 로고다. ㅎㅎ 

 

 

어쩌면 미호에서의 아픈 기억이 있기에 지금 내가 더 행복을 느끼며 사는지 모른다. 아직도 그때의 미련은 남아있지만 그때마다 "아니야! 아니야!! 지금 내가 가는 인생길이 가장 행복한 거야." 하면서 내 스스로를 달래본다.

 

2004.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