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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山樂水/전남광주

지리산~그 장쾌한 능선(04.5.22~23)

by 박카쓰 2011. 1. 31.

 

지리산, 그 장쾌한 능선에 흠뻑 취해

 

2004년 5월22일(토)-23일(일) 메아리 산악회를 따라

 

 

지리산 그 장쾌한 능선에 흠뻑 취해.hwp

 

 

  토요일 저녁 아홉시, 청주를 출발한 우리버스가 대진고속도로를 경유하여 함양에서 88고속도를 달려 자정 무렵 지리산 북쪽자락 삼정리에 도착한다. 눈꺼풀이 감기고 졸음이 엄습해 오지만 간단히 아침을 북어콩나물국으로 때우고 음정리에서 오늘의 산행을 시작하며(24:23) 입구의 ‘영원사루트’라는 안내판을 읽어본다. 민족의 애환이 담긴 빨치산 전투! 아마도 그 후예들이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지 고행의 길을 나선다.

잘 다듬어진 시멘트 임도를 따라 얼마쯤 올라 영원사를 옆으로 끼고 돌며 이젠 흙길로 접어든다. 내도 혼자 왔는데 함께 올라가는 이들도 모두 혼자 왔다보다. 지리산에 와 본 이야기를 꺼내보는데 이번이 6번째인 내가 성적표가 제일 초라하다. 그래 난 지리산의 장쾌한 능선을 제대로 본 적이 한번도 없고 오늘, 그 기대를 가지고 왔도다.

 

  비가 온다던 예보와는 달리 하늘에는 별도 총총, 저 위 주능선에서의 풍광이 벌써부터 마음속에 그려지는 듯하다. 셋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줄곧 임도를 따라 오르다보니 능선으로 접어드는 곳을 지나 벽소령대피소 바로 밑까지 올라왔다. 에이, 젠장! 일행을 놓쳐버렸네. 길바닥에 표시라도 할 것이지. 설마 그 정도면 찾아오겠지 했나보다. 하는 수 없지. 나중을 위해 체력을 비축했다고 생각하지 뭐. 산행시작 겨우 2시간을 지났는데 벌써 벽소령대피소에 올랐다(02:30). 이리 지리산을 오르기가 쉬운가! 대피소엔 쥐 죽은 듯 고요하고 저 멀리 평지에 전기불빛만 반짝거린다.

 

  저쪽 형제봉에서 랜턴 행렬이 이리로 오고 있다. 천천히 가다보면 만나겠지. 다소 느린 걸음으로 주능선 산행을 시작한다. 덕평봉을 지나 다소 내리막길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뒤따라오는 일행을 만난다. 웬 아주머니들이 이렇게 선두그룹에서 잘 걸으시는가!

칠선봉, 영신봉을 지나며 어둠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오며 그 장쾌한 능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반짝이던 별들은 온데 간데 없고 세찬 바람에 어디서 몰려왔는지 하늘엔 구름만 가득하다. 서둘러 촛대봉에 올라 일출을 보리라는 꿈은 무너진다. 그래, 3대에 걸려 덕을 쌓아야 본다는 데 평소에 덕이 부족한 탓이겠지.

 

  세석평전에 다다르니 새벽 6시. 이렇게 이른 시각인데도 등산객들이 아침을 해 잡수랴 부산하다. 저이들도 정말로 산 꾼들이군. 촛대봉에 이르는 일대가 철쭉 밭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뒤늦은 철쭉을 보아 왔는데 절정일 때는 정말로 장관이리라. 날씨가 초겨울처럼 싸늘하다. 찰떡과 오이로 대강 요기를 하고 이제 삼신봉을 향해 남쪽으로 줄달음쳐 내려갈 길만 남았다. 삼신봉으로 향하는 능선 길은 산죽나무사이를 헤치며 비교적 완만한 코스로 산행하기엔 무리가 없지만 조망은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세석 대피소 지리산에도 입석대가 있나? 좀 내려와 바라본 세석평전, 삼신봉으로 향하는 코스에서 바라본 남쪽 눈 그리매, 그리고 최고봉 천황봉

너무나 예쁜 금낭화 군락지 산불의 잔해! 이래도 산에서 불을 지펴?

 

9시30분경 삼신봉에 다다라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본다. 작년 9월에도 이곳에 올랐지만 이번에 훨씬 조망이 좋다. 정말로 엄청난 지리산이다. 우리 민족의 숨결과 정기가 간직한 것처럼. 어쩌면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어머니 같은 모습이다. 두 봉우리에서 한참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감회에 젖어본다.

 

삼신봉 정상 내가 밤새 걸어온 길 저 아래가 청학동

 

이젠 삼신봉을 뒤로 하고 하산 지점인 쌍계사로 향한다. 이미 몸은 늘어질 대로 늘어져 처지고 돌부리에 넘어져 얼굴을 긁히고 특히나 상불재를 지나 너덜지대를 지날 즈음엔 한 가지 다짐을 해본다. 이젠 무박산행도 끝이다. 건강해 지려고 하는 짓인데 밤새워 걷고 무려 열두 시간을 넘게 말이다. 이건 건강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거라고.

 

하산 길을 거의 다 내려와 지난 번 그냥 지나쳤던 불일폭포는 지리산 10景 답게 60m 높이의 장엄한 물줄기였다. 쌍계사에 다다르며 부처님께 절이라도 몇 번 올려야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올라가기가 싫어 그냥 내려오고 만다. 이젠 그 멀고먼 여정도 끝났다(13: 50, 13시간 30분 산행).

 

 

 

계곡에서 발을 담그며 뒤돌아보니 내가 내려온 그 산이 그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다. 그래, 힘은 들었지만 지리산의 그 장쾌한 능선을 한껏 즐겼으니 앞으로 힘들 때는 그 모습을 새기며 살아가야지.

 

 삼신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지리산 그 장쾌한 능선에 흠뻑 취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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