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張英姬, 1952~2009)
영문학자, 수필가, 번역가. 소아마비 장애와 세 차례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따뜻한 글로 희망을 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내 생애 단 한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등이 있다.
[2009.5.12] 장교수님의 별세 소식을 전해듣고...
요즘 조금 우울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 분의 아름다운 미소를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이 분을 대면한 적은 없지만 이 분, 그리고 이 분의 아버지가 집필한 영어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이 분이 신문에 연재했던 '영문학의 숲을 거닐다'의 애독자이기도 했지만 가장 존경스러웠던 점은 목발에 의지해야했던 삶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않았고 더 열정적인 삶과 아름다운 글로 저에게 큰 귀감이 되어왔었으니까요. 이 분의 최근 몇년간 암투병속에서도 책과 강단을 놓지않고 집필활동과 제자사랑은 제가 이렇게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되새이게 해줍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고 장영희(57) 서강대 교수가 '엄마'에게 남긴 편지다. 장 교수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병상에서 쓴 마지막 글이다. 장 교수의 편지는 단 네 문장, 100자다. 지난달 28일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가기 직전, 병상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사흘 걸려서 썼단다.
지난 2009년 출간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은 장영희 교수가 암 투병 당시 어렵게 집필을 마친 유작이다. 2001년 발병했다가 완치된 유방암이 전이돼 병상에서 원고를 작성하면서도 장 교수는 결코 희망을 놓지 않고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기적이라 표했다. 입원해 병마와 싸우는 동안 책의 마지막 교정을 마무리한 장 교수는 2009년 5월 9일, 세상을 떠나 안타깝게도 책이 나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영문학자 장영희(1952∼2009) 전 서강대 교수의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100쇄를 돌파했다. 2009년 5월 출간 이후 10년여 만이다.
출판사 샘터는 100쇄 출간을 기념, 핑크빛 표지로 새롭게 꾸민 개정판을 냈다. 장 전 교수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손수 마지막 교정까지 본 책이다.
이번에 제작된 100쇄 기념 에디션은 산뜻하고 따뜻한 분위기 표지의 양장본으로 재출간 됐다. 비록 장영희 교수는 세상을 떠났지만, 특유의 긍정과 위트가 담긴 문장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삶의 용기를 전하고 있다.
- 2021.9.10 박카스의 산문집 「나 지금여기」를 내놓으며 수필 한 켠에도 이런 글을 썼었다.
평생 목발에 의지해야했던 삶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암투병속에서도 책과 강단을 놓지 않고 집필활동과 제자사랑을 아끼지 않은 장영희 교수님 그리고 죽기 전날까지도 암과 싸우며 혼신의 힘을 다해 생방송을 진행한 암투병 가수 길은정씨의 삶은 오늘 하루도 결코 헛되이 보낼 수 없는 시간들이다. 오늘도 이 구절을 되뇌며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매야겠다.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2024. 6.17]
서실에서 회원님들과 열공하다가 우연히 장영희 교수가 회자되었다.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 Count Your Blessings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에세이집에서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 수필 한편을 읽었다. 어느 잡지사가 자신에 관한 기사를 실으면서 기사 제목이 '신체장애로 천형(天刑)같은 삶을 극복하고 일어선 이 시대 희망의 상징 장영희 교수'였단다.
장교수는 심히 불쾌하면서 이렇게 항변했다. "나는 1급 신체 장애인이고, 암 투병을 한다. 그렇지만 이제껏 한번도 내 삶이 천형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사람들은 신체장애를 갖고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끔찍하고 비참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신체적 불편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생산적 발전의 '장애'로 여겨 '장애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천형'이라고 불리는 내 삶에도 축북은 있다면서 이렇게 적고있다.(발췌)
첫째, 나는 인간이다. 개나 손, 말, 바퀴벌레, 엉겅퀴, 지렁이가 아니라 나는 인간인다. ...인간으로 태어난 축복에 새삼 감격하고 감사했다.
둘째, 내 주위에는 늘 좋은 사람들만 있다. 좋은 부모님과 많은 형제들사이에 태어난 축복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주변은 늘 마음 따뜻한 사람들, 현명한 사람들, 재미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들을 만난 것을 난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내겐 내가 사랑하는 일이 있다. 난 대통령, 장관, 재벌 총수보다 선생이 훨씬 보람있고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남이 가르치면 알아들을 줄 아는 머리와 남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할 줄 아는 마음을 갖고있다. .안하무인에 남을 아프게 해놓고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적어도 기본적 지력과 양심을 타고났으니, 그것도 이 시대에 천운이다.
참, 내가 누리는 축복 중에 아주 중요한 걸 하나 빠뜨렸다. 책은 아무나 내는 줄 아나? 이렇게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어 책을 낼 수 있고 날 알아보는 독자가 "선생님 책을 읽고 힘을 얻었어요"하고 말해 주는 것은 내가 꿈도 못 꾸었던 기막힌 축복이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내 삶은 천형은 커녕 '천혜(天惠)의 삶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는다.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란 것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 내리는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 장영희 교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에서
불가에서는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들판에 콩알을 넓게 깔아 놓고
하늘에서 바늘 하나가 떨어져
그중 콩 한 알에 꽂히는 확률이라고 합니다.
그토록 귀한 생명 받아 태어나서,
나는 이렇게 헛되이 살다 갈 것인가.
누군가 나로 인해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장영희가 왔다 간 흔적으로
이 세상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아진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네 가슴속 숨은 상처 보듬을 수 있다면’,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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