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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山樂水/세계방방

현대판 우공이산, 절벽장랑&홍기거

by 박카쓰 2025. 4. 24.

우공이산 (愚公移山) 이라는 말은 한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마침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한 말로 많이 인용되는 고사성어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의 배경이 되는 태항산(太行山)이다. 나이 90세가 넘는 우공(愚公)이 태항산과 왕옥산에 가로막혀 길을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없애고자 산을 옮기려고 마음을 먹었다.

태항산의 흙을 파서 발해까지 한번 운반하는데 1년이 걸렸지만, 우공은 자자손손 대를 이어 하다보면 언젠가는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믿고 계속하자 이에 옥황상제가 감동받아 산을 옮겨 주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전설속 우공이산이 인공터널으로 만들어졌다. 바로 현대판 우공이산,  절벽장랑이다.   

마을사람 10여명이 이 절벽을 뚫어 도로를 만들었다.

절벽장랑(廊)은?
1972년, 세상과 고립되다시피 살던 곽량촌 주민들 10여명이 죽기를 각오하고 밤낮없이 맨손(정과 망치)으로 바위 벼랑을 파기 시작하여 무려 5년에 걸쳐 오늘날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절벽장랑 길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정의 양이 무려 12톤이었다고 하니 그 피땀나는 노력이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관광객들이 걸어서 올라가고있다.

태항산 인공 터널(1,250m)은 가난한 민초들이 맨손으로 일궈낸 기적의 터널이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거대한 절벽에서 2만6,000㎥의 돌덩어리를 캐내고 정 12톤을 마모시켰으며 8파운드짜리 쇠 추 4,000개를 소모했다.

70세 노인부터 10대 소녀까지 공사에 참여하여 커다란 돌덩어리는 손으로 들어서 옮기고 돌가루는 작은 광주리나 바구니에 담아 운반했다.

절벽장랑은 만선산 가는 길에서 20인 버스로 30분정도 타고 곽량촌으로 갈 수 있단다.

멀리 보이는 마을이 곽량촌...

곽량촌...

태항산 일원에 있는 다른 지역주민들도 곽량촌 주민들처럼 도로를 만들었다. 그 마을을 지나려면 통행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3~4년후 관광지 개발이 끝나면 국가에서 관리를 한다고 한다.

이 분들은 천계산에 굴을 뚫은 사람들의 업적을 이리 기리고있다. 

그리고 이 사람은
태항산의 굳세고 강한 사나이 촌장 장영쇄! 사비를 들여 1992~1997년까지 5년간 1,200m의 굴을 파서 이곳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었단다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기려 200210대 감동 중국의 인물로 선정되었단다.

바로 이런 굴...

만선산,천계산으로 가며 이 봉고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무서워 자리에서 옴짝달짝 못하였다.

10,000명의 신선이 살고있다하여 붙여진 이름,만선산!

 

2025.4.16~20 태항산을 여행하며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이 또하나의 현대판 우공이산 홍기거였다. 홍기거(紅旗渠)는 붉은깃발을 내걸고 만든 수로라는 의미다.

하남성 임주시에 사는 주민 30만명이 그들의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태항산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1960~69년까지 10여년에 걸쳐 1,250개의 산과 152개의 험준한 봉우리를 깎고 다듬고 뚫어서 만든 1.500km 길이의 인공수로로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놀라운 곳이다.

예로부터 허남성 임주는 물이 부족하고 가뭄이 들어 해마다 기근과  흉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단다. 오죽하면 '인상식'(사람을 먹었고) '역자이식'(차마 자식은 먹을 수 없어 자식을 바꾸어 먹는)이란 말이 생겼을까?

그러다가 1960년 젊은 청년들이 나서서 수로를 만들기 시작했단다. 홍기거의 시작은 산시성 창즈시에서 시작한다. 

인공수로의 시작점인 '홍기거원' 강물의 반을 이 곳으로 흘러들어가게 하였다.  

들판에 수로가 보인다. 이 수로가 자그만치 1,500Km에 이른다.

중국의 산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이 곳엔 '수로장성'이 있는 셈이다. 공사중 80여명이 생명을 잃었단다.

이 홍기거 공사중 가장 어려웠던 구간이 바로 이 청년동이란 곳이다. 태행산 암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이 기계가 아닌 망치와 정만으로 600m을 뚫었단다.  

 이들의 희생과 협력으로 뚫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이 터널이 보트 관광코스가 되어있다.  

이런 홍기거로 임주시에서는 가뭄을 면하고 농사가 가능해졌고 이제는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다. 

임주시에는 이 홍기거의 정신을 이어받자며 교육기관이 들어서있고 공산당원들이 찾아온단다.  

홍기거는 마우쩌둥이 중국을 수립한 후 공산당의 영도하에 이루어진 사업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있다.

하지만 홍기거는 린저우(임주)의 10만 우공(遇公) 즉 주민들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자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건설한 수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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