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學而時習/역사저널

구운몽, 김만중의 사모곡~

by 박카쓰 2012. 12. 2.

이번 주말, 참으로 의미깊은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서포 김만중, 그리고 그분의 어머님 윤씨부인...

정말로 감명깊어 두번이나 보았네.

 

 

구운몽, 김만중의 사모곡


■ 방송예정일 : 2012. 11. 29 (목) 22:00~22:50 , KBS 1TV (긴급편성으로 결방될 수 있음)
■ 글·구성 : 임미랑 작가
■ 연출 : 윤찬규 PD

17세기 김만중이 쓴
한국 고전소설의 대표작, 『구운몽』

1832년 중국, 구운몽을 개작한 『구운루』의 발견!
1892년 일본, 일본 최초의 여성작가 히구치 이치요가 『구운몽』 필사!
1922년 영국, 구운몽의 최초 번역본『The cloud dream of the nine』의 출판!
2011년 스페인, 『구운몽』 번역 출간!


시공간을 초월하여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구운몽』
『구운몽』의 매력은 무엇인가?
『구운몽』이 지닌 어떤 문학적 힘이 세계를 사로잡는 것일까?

“김만중은 이 작품을 자비롭고 교양 있으셨던
그의 어머니께 바쳤으며,
이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구운몽』스페인어 판 서문 중


<역사스페셜>에서는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통해
김만중과 그의 어머니 윤씨, 모자(母子)의 지극한 사랑을 재조명한다.


■ ‘대제학’ 김만중, 패관문학을 쓰다!
17세기 조선사회에서 소설은 언문, 패관문학이라고 폄하되었다. 지배층에 대한 도전이나 풍습을 해칠 것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장관에 해당하는 ‘대제학’이란 벼슬에 올랐던 김만중,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구운몽』을 집필한다.
김만중은 문학의 장르가 아닌 그 속에 무엇을 담느냐를 문제로 삼았다. 그래서 소설이란 장르에 부처님의 진리와 공자의 사상, 성리학을 담은 『구운몽』을 써냈다. 그가 소설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왜 『구운몽』을 썼을까?


▲ 경기대학교 소장 <구운몽도 병풍> 중 ▲ 서포 김만중


■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 부인의 교육철학 : ‘왼손엔 미음 그릇, 오른손엔 회초리’


▲윤씨의 교육철학은 ‘왼손엔 ▲ 『구운몽』한글본
미음그릇, 오른손엔 회초리’였다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병자호란 때 강화에서 성을 지키다 분신 자결했다.
선조의 딸, 정혜옹주의 외손녀였던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 부인은 몸소 베를 짜고 수를 놓아 생계를 꾸리면서도 유복자였던 김만중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교육을 시켰다. ‘왼손엔 미음 그릇, 오른손의 회초리’로 표현되는 그녀의 교육철학은 김만중의 문학 세계와 사상적 토대를 다지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윤씨 부인, 그녀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본다.

■ 『구운몽』, 조선의 베스트셀러가 되다!
『구운몽』은 일반 서민부터 양반관료, 심지어 왕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의 사람들이 향유한 작품이었다. 오늘날 도서대여라 할 수 있는 세책, 『구운몽』은 특히 부녀자들이 앞 다퉈 찾아 읽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영조와 정조 역시 『구운몽』을 읽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의 국민문학, 『구운몽』! 왜 그들은 구운몽에 빠져든 것일까? 『구운몽』만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힘을 살펴본다.


▲ 『구운몽』 한글본 ▲ <구운몽 병풍도>


■ 외국 독자들, 『구운몽』에 빠지다!
전 계층의 사랑을 두루 받던 『구운몽』은 독자층을 세계로 넓힌다. 그 첫 번째 나라는 중국이었다. 『구운루』라는 이름으로 개작, 증보된 구운몽은 오늘날에도 중국의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 『구운몽』은 왜 구운루가 되어 중국에 전래된 것일까? 오늘날, 중국인들이 『구운몽』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 『신증 구운루』 ▲ 오늘날에도 중국인들은 『구운몽』을 읽고 있다



▲ 히구치 이치요 ▲ 히구치 이치요가 필사한 『구운몽』


일본 메이지 시대의 대표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요’. 그녀는 『구운몽』의 한문본을 필사하며 소설을 공부했다. 일본 국민의 큰 공감을 얻는 작품을 쓰며 ‘메이지 문단의 천재’라 불리고 있는 히구치 이치요. 그녀는 왜 『구운몽』을 필사했을까? 구운몽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 제임스 게일 목사 ▲ 제임스 게일이 번역한 『구운몽』


1922년 영국에서 『구운몽』이 최초 번역, 출판된다. 구운몽을 번역한 사람은 한국에서 목사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제임스 게일’.
그는 왜 구운몽을 번역하게 되었을까? 그가 『구운몽』을 통해 보았다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동양인의 사상과 이상향은 무엇이었을까?



■ 어머니와 아들의 지극한 사랑



▲ 남해 노도

서인과 남인의 치열한 당파싸움 속에서 김만중은 3번이나 유배 길에 올라야 했다. 배웅을 나왔던 어머니는 “차마 아들이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며 먼저 가마에 올랐다. 김만중은 유배지에 와서도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속에 지냈다.

오늘 아침 어머니를 그리는 글을 쓰고자 하나
글자가 되기도 전에 눈물 이미 흥건하다
몇 번이나 붓을 적셨다가 내던졌는가?
문집에 남해시는 응당 빠지고 없으리...


유배지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들어야했던 김만중, 그 또한 3년 후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가 유배지에서 썼던 『구운몽』은 어머니를 위한 사모곡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자간의 지극한 사랑을 통해 빛을 본 『구운몽』은 17세기 고전으로만 그치지 않고 오늘날에도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