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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수첩/수업혁신

새롭게 조명해보는 의사 안중근(4.25 금)

by 박카쓰 2014. 4. 28.

민족정신 바로 알기 -한국근현대사의 올바른 이해와 인식- 을 주제로

충북대 박걸순 교수님으로부터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는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아시아 120주년, 왜 과연 안중근인가?

요즘 형세가 120년전과 같은 흐름...

미국과 일본이 손잡고, 중국과 우리가 손잡고...

 

한국근현대사에서 독립운동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안중근 40%>유관순 20%>김구>윤봉길>안창호

 

김좌진 장군, 안중근장군? 독립의용군 참모중장이다.

하지만 안중근 장군이 아니고 안중근 의사이다.

 

호칭은? 이승만박사, 안창호선생, 안중근의사, 유관순열사, 신채호선생, 이준열사

의사 vs. 열사는?

의사는 안중근, 이봉창, 강우규, 윤봉길...

목표를 두고 "무기"를 가지고 실행에 옮긴 분...

열사는 유관순, 이준(할복? 신채호작품) 

 

여순감옥에서 옥사하신 분...

안중근의사, 신채호선생, 이회영선생 세분...

 

안중근의사와 최근 불특정다수 파괴와 살인과는 비교도 안돼...

1. 살인의 명분이 있다-이토오를 죽여야하는 15가지 이유

2. 역사적 정당성이 있다-동양평화론

   일본, 중국, 우리나라가 삼국 연대론

   하지만 이토오는 일본주도의 침략적 평화론

 

호부견자...ㅠㅠ

호랑이처럼 엄한 아버지, 개만도 못한 아들...

 

아직도 안중근의사의 시신을 찾지못하는 안타까움...

하지만 꼭 찾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찾고있단다.

 

 

 

 

안중근 어머니께서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조마리아 여사

 

 

처형당하기 직전의 모습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전상서

불초한 자식은 감히 한 말씀을 어머님 전에 올리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 문안인사 못 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에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주시니
훗날 영원의 천당에서 만나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現世)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편안히 하옵기를 천만법 바라올 뿐입니다.
분도(안 의사의 장남)는 장차 신부가 되게 하여 주시길 희망하오며,
후일에도 잊지 마시옵고 천주께 바치도록 키워주십시오.

이상이 대요(大要)이며, 그밖에도 드릴 말씀은 허다하오나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뵈온 뒤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아래 여러분께 문안도 드리지 못하오니, 반드시 꼭 주교님을
전심으로 신앙하시어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옵겠다고 전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은 정근과 공근에게 들어주시옵고
배려를 거두시고 마음 편안히 지내시옵소서.

- 아들 도마 올림 -  세례명 Thomas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는 모친의 말에 따라 의사는 이후 공소도 포기한 채, 여순감옥에서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의 저술에만 심혈을 쏟았다. [안응칠역사]는 의사의 자서전이고, [동양평화론]은 거사의 이유를 밝힌 것이었다. 재판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의사는 일본인들에게 거사의 이유를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구구하게 이유를 밝혀 목숨을 구걸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싫었다. 그래서 의사는 공소를 포기한 뒤,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여 후세에 거사의 진정한 이유를 남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마저 일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시작하면서 이것이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사형 집행을 연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일제는 이를 무시하고 사형을 집행하였고, 그에 따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31세로 뤼순감옥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원래는 3월25일 죽게해달라고 함...이 날이 예수 순교길, 자신은 순국하는 날로 정함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여한이 없겠노라.

  내가 죽은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큰 뜻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순국 직전 동포들에게 남긴 의사의 마지막 유언-

 

 

 

 

안중근의사 서거 101주년 

 

이토오 히로부미를 처단해야하는 15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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