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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山樂水/제주도

아, 설경의 한라산 백록담(05.1.23) ~

by 박카쓰 2008. 7. 17.
 

한라산 겨울등반 

2005년 1월23일, 메아리산악회를 따라

  

   누군가 이야기하데요. 敎師三樂! 그 첫째가 돈만 먹지 않으면 정년까지 버틸 수 있고 둘이 여름 겨울 두 번의 방학이 있어 쉬었다 갈 수도 있고 그 마지막이 항상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며 비록 교과서, 참고서라 할지라도 책을 가까이하니 이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하지만 올해 고등학교에 와보니 방학에 오히려 더 수업이 많네. 비록 살림 밑천은 된다하나 충전할 기회가 있어야 살맛이 나는 법 아닌가!  

 

  그렇게 맞이한 한라산 겨울등반! 해마다 이런 산행이 있지만 비행기타고 제주도 가는 일이 어이 그리 쉬운 일이던가! 비행기 삯을 계산하면 며칠 묵으면 좋으련만 겨우 주말만 시간이 있다 보니 1박2일로 한라산 등정에 나섰다.

  토요일 오후 6시 비행기로 청주를 이륙하여 제주에 도착했는데 제주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함께 온 일행과 호텔방에서 저녁뉴스를 보는데 남해안과 제주도에는 비가 내리고 산간지방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하니 걱정이로다. 겨우 겨우 그 비싼 비행기타고 왔는데 한라산 입산 통제시키면 어쩌나 하고 새벽녘 시간마다 깨어나 창밖을 보니 비가 점점 더 세게 오는 듯하다.

  그래도 도시락을 챙겨들고 버스에 오른다.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도로를 오르다보니 이젠 비가 눈으로 바뀐다. 점점 더 올라가며 주위가 눈 세상으로 변한다. 다행히도 성판악 공원관리소에서 주의 방송을 하며 입산을 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날이 궂은 데도 많은 분들이 오셨구나. 아마도 나처럼 물 건너오신 분들이겠지. 그래, 올려 보내기만 한다면 일단은 성공한 셈이지.‘     

 

  아이젠, 스패치, 스키장갑, 비닐 우의로 단단히 겨울 산행준비를 하고 등정에 나선다.(08:20) 아직 하늘은 찌푸리고 눈비가 내리지만 이번 겨울 들어 처음 밟아보는 눈길이다 보니 신까지 난다. 얼마쯤 걸었으랴 안개 터널 사이로 주위에 온통 해송나무뿐이고 그 가냘픈 가지가 축 처지도록 눈이 쌓여 있었다. 작년 3월5일 청주에 내린 50cm의 눈처럼.

 

  이제 안개지대를 지나면서 햇볕이 밝게 빛나게 있었고 위로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모 대피소를 지날 땐 저 멀리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했는데 구름이 아니고 ‘흙붉은 오름’이란다. 진달래 대피소에는 많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멀리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지라 서둘러 올라가고 싶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좀 가파르기도 하였지만 그 설경에 도취되어 힘 드는 줄 모르고 계단을 오른다.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는 듯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듯 온통 순백색의 세상이로다! 저 아래로는 비행기에서 내려 보는 구름모양 하늘을 뒤덮고 오직 내 위로만이 파란 하늘뿐이로다!

  1950m! 어쩌면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인데 어이 내가 사는 세상과 어이 이렇게 다를 소냐! 백록담 분화구엔 온통 은백색 천지다. 오늘따라 거의 바람도 없어서 원색의 등산객들이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사진을 찍으며 모두가 로또복권에 당첨된 듯 상기된 표정들이다. 누군가 말한다. “내가 이곳에 몇 십번을 올라왔어도 오늘 같은 날씨는 처음입니다.” ‘그래, 그런 거야. 내한테도 그런 행운을 얻게 되다니 참으로 고마운 노릇이로다.’

 

 

 

 

 

 

 

 

  어리목 쪽에서 엄청난 구름이 이리고 몰려오고 있었다. 관음사로 내려가는 길은 다소 험해 정체될 것이 분명하다. 서둘러 내려가야지. 눈밭사이로 앙상한 가지의 눈꽃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설경의 극치를 보여준다. 남보다 먼저 내려가려 했다가는 1m 가량의 눈 속에 파묻히니 어쩔 수 없이 일행을 따라 정체되면서 하산한다. 용진각 대피소까지는 길이 몹시 험해 많이들도 넘어진다. 다행히도 난 6발짜리 아이젠이라 넘어지지 않고 관음사매표소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14:50). 산행시간 6시간 30분!

 제주시는 오늘 하루 종일 흐렸단다. 그런데 내가 오늘은 참으로 별난 세상에 다녀왔나 보다. 오늘 난 참으로 멋진 세상 구경했네. 어쩌나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오늘을 생각하면서 맑은 기분으로 밝게 웃으며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