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청주민예총 음악콘서트, 오래 간~'만요'
종일 서실에서 문인화 공부를 마치고 저녁 청주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2022 청주민예총 민족음악콘서트~오래 간~'만요(만요)' 그런데 만요는 뭐지? 해설자가 친절히 설명해주신다. 재미있는 그림은 '만화', 재미있는 이야기는 '만담', 그러니까 만요는 익살과 풍자로된 음악이로구나!
이정골 백음악가족과 함께 공연장에 왔다. 에구야. 관객이 적어 아쉽네. "시간되시면 얼릉 나오세요."
안치돈님의 사회로 1930년대의 음악을 세세히 설명해주신다. 일제 암흑기에 대중들의 삶은 무척이나 고달펐을때 아프리카 흑인들의 음악인 재즈와 블루스가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단다. 그래서 음악이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내용을 가지고 있고 그 시대의 삶을 추억해 볼 수 있단다. 어라? 눈에 익은 곡도 있네요.
그간 코로나로 공연도 많이 못했을터 참 힘든 시간이었겠네요.
와~ 이 색스폰 연주자 참 멋졌어요. 거의 노래가 재쯔풍이었지요.
오늘 연주곡으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들었다. 이난영 선생의 일대기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1936년 20세가 되던 해에 가요작곡가 김해송(金海松)과 혼인하였다. 뒤이어 이봉룡 작곡의「목포는 항구다」, 김해송 작곡의「다방의 푸른 꿈」등으로 당대 최고의 유명 가수가 되었다. 광복 후에도 무대가수로 활약하였는데, 6·25동란 때 김해송이 납북된 이후 K.P.K악단을 손수 운영하였다. 12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이중 7자녀를 키웠다. 남편은 이북으로 실종되었으니 혼자 7남매 뒷바라지하느랴 힘들게 살았을터... 7자녀는 혹독한 음악훈련으로 미국에서 김씨스터스·김보이스라는 이름으로 연예활동을 하였고, 1963년 한때 자식들을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하여 정작 혼자서 살다 1965년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했다.(향년48세).
이런 그녀의 인생 스토리를 알고나니 그녀가 부른 '목포의 눈물'이 더 애처럽게 들린다.
그녀의 두딸과 조카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는 1960대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얻은 한국 최초의 한류스타였다. 1970년 내한 공연때의 사진이다.
총 출연자가 나와 함께 노래 부른다.
청주민예총 음악회원 여러분! 오늘 수고많으셨습니다. 앞으로 공연있을땐 자주 찾아가볼게요.
며칠전에는 청주민예총 서예위원회 정기전이 펼쳐졌었다. 인당 조재영님도 청주민예총 회원이다.
참여하신 작가님들...
코로나19 탓인지 많은 분들이 함께 하지 못했다. 아쉽다! 이제 코로나 거리두기나 영업제한도 없어지고 저 답답한 마스크마저 벗어던지는 날이 곧 오겠지. 무엇보다 예술가들에게는 공연장과 전시장을 찾아주는 것이 큰 힘이 될 것이다.